평화의 소녀상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5>

김민(예술평론가) | 기사입력 2017/01/15 [22:45]

평화의 소녀상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5>

김민(예술평론가) | 입력 : 2017/01/15 [22:45]

필자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같이 바라보고 성장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학교를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괴담으로 흉흉하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나서 필자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검색해 봤는데 여전히 변함없는 사진 속 풍경이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필자가 보려고 했던 학교 교문에 나란히 서있는 동상의 사진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앞의 동상은 학생들이 존경할만한 역사적 인물 아니면 모범적으로 책을 읽는 어린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로 비슷한 위인들의 동상이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1984년 경향신문에서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중 충무공이 38.1%, 세종대왕이 35.4%를 차지했다.

 

또한 1998년 한 신문사가 주최하고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사 1000년을 만든 100인’에서 1위가 세종대왕이었고 2위가 충무공이라고 한다.

 

이토록 위대한 인물들을 필자의 유년시절에는 밤마다 이순신 동상이 운동장을 달리기한다는 이야기와 세종대왕의 무릎 위에 있는 책이 밤마다 한 장씩 넘어간다는 부류의 괴담이야기를 즐겨했지 그 동상을 보면서 그들의 업적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동상이라고 하면 구리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런 형상에 구릿빛을 입혀서 만들어 놓은 기념물이다. 또한 기념물이란 것은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보존하는 물건으로 이것은 사전적인 의미이다.

 

충무공과 세종대왕이야 동상으로 전국의 초등학교 앞에 세워진다고 해도 이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동상이란 것은 그렇게 순수한 목적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념동상이 건립된 것은 일제시기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기념동상의 건립은 개인이나 단체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주로 학교 설립자나 교육 사업가 등 교육계 인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방 후 이승만 정권 시기부터 기념동상의 건립이 체제유지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대 가장 많은 수의 기념동상이 박정희정권 시기에 제작돼 공공장소에 건립됐다.

 

이처럼 기념동상이라는 것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치적 선전수단으로 적극 활용됐다. 아마도 동상은 문화·예술의 정치적 이용수단 중 쉬운 분야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언급이 되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그것은 ‘소녀상’이다.
 

 

▲ 오후 7시 부산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 뉴스다임

 
국가가 정책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앞서 말했던 위인들의 모습도 아니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중심이 된 시민들의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세운 동상으로 부부 작가(김운성, 김서경)의 작품이다.
 
어스름한 저녁 소녀상을 만나기 위해서 부산의 일본대사관 앞을 찾았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는 소녀를 이제야 찾게 되다니, 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흔적이 엿보였다.

 

소녀는 높이가 130cm이며 치마저고리를 입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모습으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때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평화비 표지석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평화비 문구와 함께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라고 적혀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후 국민 모금 등으로 전국 27곳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등 해외 3곳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녀상은 정치적으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장소에 있을 수는 없다. 또한 일반적인 동상의 규모처럼 큰 것도 아니다. 어떠한 자세를 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녀상은 특정한 장소에서 한 장소를 응시하고 있으며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녀상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만나러 오는 것이며 그리고 위로하러 온다. 여태껏 무수히 우리 곁에 있었던 그 어떠한 기념동상은 아무런 언어도 간직하지 못했다.

 

 나보다 낮은 곳에 앉아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는 동상, 누가 소녀를 위로할 수 있을까? 위에서 세워진 기념동상이 아닌 아래에서 세워졌으며 지키고 있는 평화의 동상 그것이 소녀상이다. 현재에도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이전 문제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필자는 ‘평화의 소녀상’이 지켜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았던 힘의 구조가 바뀌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물론 앞으로 소녀가 슬프지 않고 외롭지 않도록 그 상처가 아물어지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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