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의 '예술을 위한 예술'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11>

김민(예술평론가) | 기사입력 2017/05/20 [19:54]

휘슬러의 '예술을 위한 예술'

김민의 '예술 읽어주기'<11>

김민(예술평론가) | 입력 : 2017/05/20 [19:54]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1855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와 런던에서 활동한 화가다.

 

그의 다양한 작품 중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작품은 '검정과 금빛 야상곡'(1875)이다. 이 작품은 어두운 그림의 거친 붓터치 안에서 찬란한 금빛이 떨어지고 있다.

 

그림 안에서 명확한 형태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배의 형태와 물가 그리고 그림의 전경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을 그린 휘슬러는 예술은 ‘미’의 구현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를 추구하는 유미주의 운동의 선봉자였다.

 

서사적인 내용이 그림의 주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당시에 휘슬러는 시각 대상의 색과 형태, 구성에 주목하면서 회화의 조형 언어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미술을 추구했다.

 

▲ 제임스 휘슬러,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1875     © 김민 기자

 

또한 휘슬러는 회화에서 음악과 같이 순수하고 추상적인 아름다움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휘슬러의 ‘하모니, 녹턴, 심포니, 음조’ 등의 음악적인 제목들은 회화가 어떤 특별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색채와 형태의 자유로운 조합을 의미한다.

 

휘슬러의 ‘순수회화’는 실제 대상의 재현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추상화된 형태와 선, 색에 의해 감성과 정신적 개념들이 구현되는 현대의 추상미술의 이념과 연결된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미술 평론계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의 옹호 아래 라파엘 이전의 화가들을 본보기로 택해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구성했다.

 

라파엘 전파의 작품은 정화한 세부 묘사와 종교적인 신비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장식성을 특징으로 한다. 영국 미술의 이러한 흐름 아래에 비춰진 휘슬러의 미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서사적인 내용을 결부시키지 않은 채 회화를 단지 회화 자체로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휘슬러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1877년 런던 그로브너 갤러리, 이곳에서 휘슬러의 작품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이 전시됐다. 

 

이 그림을 본 비평가 러스킨은 “휘슬러 자신과 이 그림을 구매할지 모르는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해 갤러리에 전시할 그림으로서 그릇된 교육을 받은 화가의 작품인 고의적인 사기 행위에 근접하는 그림은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나는 지금까지 뻔뻔한 런던내기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관중들 면전에 물감통 하나 집어 던지고서 200기니의 값을 부르는 사기꾼의 경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휘슬러는 곧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러스킨은 계속 피해 다니며 재판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피해 다니다가 러스킨은 변호사와 함께 재판장에 나타났다.

 

재판 도중 러스킨의 변호사는 그림을 그린 시간이 얼마나 됐냐고 물었고 휘슬러는 이틀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변호사는 고작 이틀이라는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으로 휘슬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생의 작업으로 얻은 내 지식에 대한 대가로 그 값을 요구했다”

 

이로써 결국 재판장은 휘슬러의 손을 들어 주었고 러스킨이 손해배상금을 주기로 하고 송사 비용은 각각 반씩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듬해 휘슬러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위 재판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회화의 전통적인 역할인 재현의 기능으로부터 탈피하고 추상성으로 나아가는 휘슬러 작품의 미학 이념을 당시 사람들은-미술평론가조차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휘슬러는 “모방하는 사람은 궁색한 종류의 인간이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나무나 꽃 등 대상의 표면만을 그리는 사람이 예술가라면 예술가의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사진가일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의 일은 이보다 높은 수준의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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