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진실의 왜곡을 부정한다

정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02/15 [20:47]

5.18은 진실의 왜곡을 부정한다

정의정 기자 | 입력 : 2019/02/15 [20:47]

2017년 개봉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이를 규탄하는 역사학자 간의 대결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 )은 미국의 유대인 역사학자인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 )를 영국 법원에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다. 립스타트 교수가 여러 경로를 통해 어빙을 홀로코스트 부인론자(denier)로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이 무죄로 판결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원고에게 있지만, 영국에서는 소송의 피고가 원고의 오류와 책임을 직접 입증해야만 한다.

 

이에 립스타트는 홀로코스트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며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어빙 교수에 맞서,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내야만 한다. 만일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홀로코스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갑자기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립스타트 교수를 돕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앤서니 줄리어스(앤드류 스캇 )와 베테랑 변호사 리처드 램프턴(톰 윌킨슨 )이 나선다.

 

그들과 함께 아우슈비츠의 현장 검증에 나선 립스타트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당시 생존자들을 법정 증언에 세우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을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하는 립스타트를 막아선다. 이는 자칫 희생자들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립스타트의 확신을 악용하여 역사적 진실을 희석시키려는 어빙의 간계에 휘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증언대에 나와 당시 우리가 그 가스실에 있었다라는 증언을 하는 것이 재판에 유리할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생존자들의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밀하지도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다.

 

이러한 왜곡된 기억을 데이빗 어빙같은 사람들은 아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예를 들어, “가스실의 손잡이가 왼쪽에 있었는데, 당신은 오른쪽에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당신의 모든 말은 거짓말입니다.”와 같은 식이다.

 

이 영화는 1996년에 제기되고 20001월부터 4월까지 32번의 공판을 거쳐 마무리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비단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실제 했었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제로부터 당했던 위안부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왜곡된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진실 왜곡 전략은 유사하다. 이들은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결함을 토대로 전체를 부정해버린다. 영화에서도 데이빗 어빙은 당시 가스실에 기둥이 있었다는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며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극적인 말들을 언론에 흘리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퍼져 나가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역사에 존재했었음을 엄연한 사실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그러한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끈기, 노력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변호인들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로진 명백한 사실과 진실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증거와 추론이었다. 그렇게 변호인들은 명백한 증거와 추론을 통해 어빙을 압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 지붕에 화학약품을 투입할 구멍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어빙에게 건물의 용도가 가스 유입을 통한 학살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견고한 건물을 지은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에 어빙은 대피소로 쓰려고 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놓자, 재차 나치 친위대의 막사와 가스실은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다. 폭격에 대비한 대피소를 그렇게 멀리 지었다는 말인가? 폭격이 시작되면 그 먼 거리를 완전군장을 하고 뛰어가서 대피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거세게 몰아 부친다.

 

이에 어빙은 당황하며 자신은 아우슈비츠 전문가가 아니라 히틀러 전문가라며 발뺌을 한다. 이에 변호인단은 쐐기를 박는다.

 

그렇다면 막연한 추측만으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말고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입 닫고 있으라.”

 

사실 홀로코스트와 달리 5.18은 상당량의 진실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남아 있고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의 명백한 내란 행위였다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며 북한국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역사적 진실보다는 영화에서의 어닝과 같이 자신들의 명성에 더 목을 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재판이 끝난 후 립스타트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말을 모두 할 수 있지만, 거짓을 말하고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5.18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그 책임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살아서 꿈틀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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