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희노애락 녹아 있는 '창덕궁 대조전과 낙선재'

박인수 기자 | 기사입력 2019/08/26 [11:11]

왕실 희노애락 녹아 있는 '창덕궁 대조전과 낙선재'

박인수 기자 | 입력 : 2019/08/26 [11:11]

창덕궁은 북한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으로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해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다시 짓는 과정에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했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해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동궐도   사진: 창덕궁 홈페이지   © 뉴스다임

 

창덕궁 내에서 가장 으뜸인 대조전(大殿)

 

대조전은 창덕궁 내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이다. 조선 제9대 성종을 비롯해 인조, 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조선조 왕실이 생활하던 건물로, 특히 한말 황실의 내실모습을 그대로 담겨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건물이다.

 

대한제국 황실 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잘 보존돼 있고, 건물 안에는 소파와 거울, 침대, 서양식 세면대와 욕조, 화장실 등이 남아 있다. 대조전 부근에 있는 수라간에서는 타일, 오븐, 수도 등 서양식 부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창덕궁 내 대조전     © 뉴스다임 박인수 기자

 

 

헌종의 순애보가 담겨 있는 낙선재(樂善齋)

 

낙선재는 색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건물 세 채가 나란히 서 있다.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후궁 경빈의 거처, 수강재는 대와대비인 순원왕후의 거처였다. 후궁을 위해 새로 집을 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석복현은 錫福軒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뜻으로, 왕세자의 탄생을 기원하고 있다. 헌종이 첫눈에 반했던 경빈이 간택되길 원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3년동안 후사가 없자, 경빈을 후궁으로 택해 석복현을 지어 주게 됐다.

 

▲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했던 낙선재     © 뉴스다임 박인수 기자

 

왕실의 가족들이 머물던 곳이었기에 낙선재 주변으로 많은 집들과 정원이 있었으나, 일부는 일제강점기 때 철거돼 빈터를 중 일부는 화단으로 조성해 보전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 때 낙선재를 둘러싸고 있던 집들이 철거되면서 현재는 화단으로 조성돼 있다.     © 뉴스다임 박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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