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비틀즈<2>

박현서 대중문화평론가 | 기사입력 2020/10/31 [11:14]

BTS와 비틀즈<2>

박현서 대중문화평론가 | 입력 : 2020/10/31 [11:14]

앞서 쓴 칼럼에서 BTS가 2017년 후반 이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하면서 서구의 유력 언론 매체인 가디언, CNN 등에서 BTS를 비틀즈와 비교한다든가, 제2의 비틀즈라 지칭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이번에는 비틀즈의 음악적 성과와 BTS와 K-POP에 대해 두 차례 걸쳐 알아본다.

 

 

비틀즈로 인한 첫 번째 음악적인 성과로는 침체됐던 로큰롤이 완벽하게 부활했고, 로큰롤이 세련됨과 정교함을 더해 록으로 진화해가면서 향후 수십년간 팝의 주류로 군림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성과는 늘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는 실험정신으로 비틀즈는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발라드, 헤비메탈, 레게 등 그 당시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록에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비틀즈 이후 모든 록은 비틀즈의 변주 또는 응용이라 할 정도로 그들의 음악적 폭은 넓었다.

 

세 번째로 클래식이 인정할 정도로 예술성이 깊다는 점이다. 비틀즈의 앨범들은 발표가 될수록 예술성이 짙어졌다. 세계 500대 명반 중에 1, 3, 5위는 비틀즈의 앨범인데 그 앨범 중 ‘페퍼 상사’ 수록곡들은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슈만, 모차르트, 브람스의 작품에 견줄 수 있다.”며 극찬을 했다.

 

수록곡들 중 ‘She’s Leaving Home’은 팝과 클래식의 경계를 허문 명작이라 평가를 받았다. ‘A Day In The Life’는 대중음악이 성취할 수 있는 예술적 경지의 극치라고도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비틀즈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서구의 언론 매체들이 BTS를 제2의 비틀즈라 칭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매우 예쁜 신인 연예인이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면 제2의 김태희니, 전지현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쓰는 경우와 유사하다. 물론 아무나 제2의 비틀즈라 부르지 않고 그런 경우조차 극히 드문 것도 사실이다.

 

서구의 언론매체들이 제2의 비틀즈라고 칭하는 'BTS'      사진: 유튜브 캡쳐  © 뉴스다임

 

방송도 장사인데 제2의 비틀즈라고는 말해야 시청률도 올라가고 클릭 수도 증가할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BTS가 이룩한 성과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혹시 기분이 언짢은 아미분들은 필자의 이전 칼럼들을 읽어보면 필자가 BTS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BTS가 백인과 영어 위주의 세계 대중음악 분야에서 인종적인 편견을 깨고,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며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Main Stream(주류로 쓰는 것보다는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더욱 크다)으로 대우를 받는 것은 단순히 빌보드 핫100 1위를 한 것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성과다.

 

더불어 BTS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K-POP 걸그룹인 블랙핑크도 전 세계 팝시장에서 탑아티스트로 인정을 받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가 선도를 해준 덕택(싸이의 역할도 작지 않다)에 후배 K-POP 뮤지션들이 훨씬 수월하게 그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K-POP의 현재 위상은 샹송이나 칸초네, 독일팝과는 비교할 대상 자체가 아닐 정도로 높아졌다. 그렇기에 이제는 K-POP의 이면을 차분히 살펴볼 여유도 생겼다. 

 

서구 언론의 BTS 띄어주기에서 한 걸음 벗어나 아직도 인종적 편견이 심한 북유럽 일부 지역이나 미국의 보수적인 남부에서는 K-POP팬들을 ‘Koreaboo’라 부르며 은근히 깔보는 시선이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이돌에게만 집중된 K-POP의 음악적 편향성은 개선해야 할 큰 숙제이다.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아이돌 연습생들의 열악한 상황도 문제가 심각하다.

 

K-POP의 어두운 면을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 제2의 BTS, 블랙핑크가 더 빠르게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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