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의 성공 요인

박현서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1/01/18 [21:45]

K-드라마의 성공 요인

박현서 칼럼리스트 | 입력 : 2021/01/18 [21:45]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위트홈'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면서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시청률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자막 처리된 비영어권 드라마가 미국에서 시청률 3위에 오른 것은 미국 드라마 역사상 최초다. K-드라마가 중국,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드라마 시장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대중들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미국에서 이 정도까지 큰 호응을 받으리라고는 제작사조차 예상하지 못 했던 바다.

 

2020년 일본 넷플릭스 시청률 상위 10편 드라마 중 5편이 K-드라마이며 대만은 10편 중 9편, 말레이시아는 10편 중 8편이며 베트남은 10편 중 7편이다.

 

이번 칼럼에는 K-드라마가 아시아를 석권하고 성공적인 세계 진출을 하게 된 제작환경의 변화에 대해서 간략히 조망하고자 한다.

 

2010년까지 드라마는 KBS, MBC, SBS에서 제작, 방영했고 당시의 케이블 TV(tvN, OCN, Mnet 등 일부 제외)는 외국 드라마를 수입, 방송하거나 지상파 3사의 드라마를 재방송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1991년 방송법의 개정으로 지상파 3사도 드라마 제작의 일정 부분을 외주 제작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 한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겨울연가'는 당시 신생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다.

 

드라마 제작의 일정 비율이 외주로 넘어감에 따라 드라마 송출은 지상파 3사로 한정됐으나 제작 경쟁은 치열해져서 한국 드라마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기본법에 따라 29년 동안 신문사, 대기업의 방송에 대한 자본 참여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2009년 미디어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규제가 완화됐다.

 

이후 4개사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신설됐다.

 

2006년 개국해 자체 오락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했던 CJ E&M 산하의 tvN 및 OCN과 2011년 종편 4개 채널의 출현으로 드라마 제작 편수는 급격히 증가했으나 물량의 증가가 곧바로 질적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tvN의 경우, 질 낮은 프로그램과 ‘섹시’ 컨셉 강조로 흡사 성인 방송 전문 채널이라는 질타와 멸시까지 받았었다. OCN 및 종편 4개사의 시청률도 1% 미만으로 채널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상파 3사와 케이블 TV의 생존을 담보로 한 시청률 경쟁은 점차 드라마의 질적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더불어 지상파 채널 스타 PD들의 케이블 TV로의 이적은 케이블 드라마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14년 드라마 '미생'이 tvN에서 방송됐다. 미생은 시청률 3%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마지막 회 평균 시청률 8.4%를 찍은 그해 최고 화제작이 됐다.

 

2014년 한국은 미생 신드롬이 일어났으며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 이름을 딴 장그래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미생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특히 일본은 판권을 구입, 일본판으로 리메이크하였다.

 

웹툰 원작인 '미생'은 무역회사에 입사한 인턴사원이 회사의 업무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 처음에는 지상파에서 제작을 시도했다.

 

지상파 제작팀이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에게 요구한 것은 러브 라인의 추가였다. 하지만 원작에 없는 러브 라인은 스토리 구조를 바꾸기 때문에 윤태호는 거절했다.

 

KBS 스타 PD로서 CJ E&M에 이적한 김원석 PD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 작가와 접촉, 원작자의 의향을 존중하며 미생을 제작했다.

 

미생의 메가히트는 K-드라마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생 이전의 한국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 불치의 병, 재벌 2세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필수 뼈대로 제작되고 있었다.

 

이는 최소한의 시청률을 보장하는 장치였으나 한국 드라마의 질적 향상과 다양성을 저해하는 암적 요소이기도 했다.

 

실제로 2014년 이전의 K-드라마 해외 시청자 중에서는 K-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서사 구조에 피로함을 느끼는 이들도 다수 있었다.

 

미생의 신드롬적인 성공은 기존 드라마의 구태의연한 서사구조를 탈피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시기부터 의료, 형사 드라마나 연애 요소를 배제한 사회성 짙은 드라마, 판타지까지 장르의 다양화가 단번에 진행되었다.

 

김원석 PD가 '미생'의 제작으로 K-드라마의 새로운 서사 구조를 성공시키고 장르적 다양성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면 같은 KBS 출신으로 CJ E&M에 이적한 신원호 PD는 드라마의 배우 캐스팅에서 기존 상식을 뒤엎은 시도를 성공시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신원호 PD는 드라마에 인기 배우가 필수라는 개념을 깨고 지명도가 낮은 배우들을 주연급 배우로 연이어 캐스팅했다. 지명도는 떨어지나 연극 혹은 영화로 연기력은 검증받은 배우를 발굴해 캐릭터에 맞는 배역을 맡겼다. 새롭게 캐스팅된 배우들은 캐릭터 고유의 매력을 창조해가며 드라마의 성공에 일조하였다.

 

신 PD의 시도는 캐스팅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춤과 동시에 절감된 비용을 드라마 제작의 다른 부분에 투입함으로써 드라마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고 또한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의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했던 주연 배우들은 이전에는 주연급이 아니었으나 이후 주연급으로 성장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에서 유명해진 경우다.

 

지상파 드라마만 제작이 되었던 시기에서는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이 케이블 TV에서는 김원석 PD나 신원호 PD 같은 능력 있는 감독들의 용단 아래 가능했고, 이는 K-드라마의 질적 향상을 수반했다.

 

하지만 K-드라마의 세계적 성공이 드라마 제작자나 감독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TV 저변 인프라 확장도 K-드라마의 성장에 톡톡한 몫을 하였다.

 

한국의 TV 시장은 2011년 종편 채널들의 개국 이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정부가 주도해 케이블 TV, IP TV의 보급을 추진했던 것이 방송 인프라의 저변 확대에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 회사가 지역 케이블 TV 사업자나 IP TV 사업자와 계약을 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방송 요금을 아파트 관리비와 함께 징수해 우리나라는 2011년 유료 방송 가구 보급률이 90%를 넘어섰다.

 

이러한 환경 덕택에 새 채널이 탄생하더라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었다. 이는 유료 채널 1개 계약하는데 3,000엔(약 30,000원)이 드는 일본과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IP TV의 보급은 시청 스타일의 다양화도 가능케 하였다. TV에서 실시간 방송을 보면서도 다른 채널의 방송을 동시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각각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컨텐츠 시청이 가능해졌고 늘어난 드라마 공급에 반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이 드라마의 질적 향상을 도왔다. 한국인들의 열성적인 사회 참여는 세계에서도 예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이는 대중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K-POP 아이돌 그룹인 2PM의 멤버 재범의 탈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팬클럽 연합 대표 87명은 당사자인 2PM 및 소속사인 JYP의 사장과 4시간에 걸친 간담회를 가졌다. 이런 팬덤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참여는 상황을 지켜보던 타국 팬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이는 드라마라고 다르지 않다. 해당 드라마의 충성 시청자들은 단순히 드라마를 보고 즐기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 이상의 무리수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해 드라마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등장 배우나 제작진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면 강력한 응징을 한다.

 

시청자의 동향에 주시하는 제작진은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며 트렌드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결론적으로 드라마의 수준을 한층 발전시켰다.

 

2011년 이후, 드라마 제작이 가능한 종편의 시장참여는 드라마 제작 편수의 급격한 증가를 불러왔고 이는 케이블 채널 방송국의 사활까지 담보로 한 시청률의 경쟁을 촉발시켰다.

 

TV 인프라의 확충으로 시청자 층은 보다 많은 방송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시청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제작자들의 노력으로 K-드라마 수준은 더욱 높아져 2019년 이후는 아시아를 넘어서서 비영어권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전 세계를 공략하고 있다.

 

이에 새로이 각광받고 있는 넷플릭스는 K-드라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K-드라마 제작사들에게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K-드라마가 보다 화려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201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장르의 K-드라마들이 세계 시장 진출에 성공했고 현재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드라마,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시청률 3위의 '스위트홈'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혹시 스위트홈을 보지 않은 분들은 꼭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 칼럼을 쓰게 한 원인이기도 하고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팝 시장의 정점에 올랐듯이 또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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