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쿄로 가다②

재일본 한국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을 찾아서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기사입력 2023/07/12 [16:01]

[기획]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쿄로 가다②

재일본 한국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을 찾아서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입력 : 2023/07/12 [16:01]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1독립운동 104주년이 되는 올해 7일 동안 일본 도쿄로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다녀온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고명주 대표. 고 대표는 나라사랑과 독립, 민족혼을 세계만방에 드높인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본과의 상생관계를 복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치유와 화해를 위해 국내외에 추모전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일본 도쿄를 다녀와 답사기를 남겼다. <뉴스다임>은 역사의 현장에서 순국선열들의 숨결을 담은 그의 일본 답사기를 올해에도 연재한다. 이번에는 재일본 한국 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을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우리나라 순국선열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의 생생한 역사가 숨쉬는 곳이 참으로 많다. 지난 역사기행에서 찾지 못하고 미루어 놓은 재일본 한국 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을 구글지도에 의지하며 찾아갔다. 

 

​​1919년 3.1운동에 앞서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운동은 제국주의 심장에서 자주독립을 외친 재일본 한국 YMCA를 들러 주재형 총무로부터 기념실의 자료실 자료와 설명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일본 한국YMCA 주재형 총무와 필자(사진 오른쪽)        사진제공: 고명주

 

  

2.8 독립선언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왜 YMCA가 주 무대가 되었고 일본 동경에 세워지기까지의 비사, 참여했던 인물들의 삶과 현재의 평가, 일본 유학생들의 형을 감형하기 위해 법률적으로 도운 일본의 지식인들, 2.8 독립선언서가 읽혀진 실재 위치 등을 주재형 총무에게 자세하게 들을수 있었다.

 

재일본 한국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 자료        사진제공: 고명주

 

2·8 독립 선언(二·八獨立宣言)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이다. 관련자료를 들추어 살펴보면 1918년 와세다 대학 철학과 학생이던 이광수는 베이징에 건너가 체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민족자결주의, 윌슨 강령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이광수도 조선 독립의 희망을 품었으며, 서울로 돌아가 현상윤, 최린과 독립운동을 논의했고 11월 동경으로 돌아가 와세다 대학의 정경과에 있던 최팔용을 만나 결의를 밝혔다. 최팔용은 백관수, 김도연, 서춘, 김철수, 최근우, 김상덕 등의 동지를 얻었다. 이광수는 원문을 쓰고 영문으로 번역을 했다. 

 

이 독립선언은 만주 길림에서 발표되었던 무오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규식의 지시에 따라 조소앙이 동경에 파견되어 유학생들을 지도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재일본 한국YMCA 도쿄 2.8 독립선언운동 기념실 자료    사진제공: 고명주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는 1919년 2월에 만주 길림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다. 3·1 운동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와 구별하기 위해서 무오독립선언서(戊午獨立宣言書)라고도 한다. 조소앙(趙素昻)이 작성했고 당시 해외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가 39명이 서명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선포한 독립선언서이며 2·8 독립선언과 3·1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YMCA 회관에 모여든 조선 재일 유학생들 앞에서 최팔용이 ‘조선청년독립단’ 발족을 선언하고 이광수가 기초한 2·8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했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했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며 민족의 궐기를 촉구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가도로 나선 학생들은 최팔용의 사회로 대회 선언과 결의를 열광 속에 가결하고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을 논의하려자 일본 경찰들이 들이닥쳐 해산을 명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굴복하지 않고  2월 한 달 내내 조선인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상해로 빠져나간 이광수에 의해 조선과 해외에 보도되었으며, 이 사건은 다음 달 3월 1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2.8 독립운동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이 기간 동안 기소된 학생들을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다. 

 

그는 1880년 11월 13일 일본제국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보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졌다고 한다.

 

동시에 묵자의 겸애사상과 톨스토이의 사상을 접하며, 이에 많은 감명을 받고, 사람들을 돕고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YMCA 기념실에 전시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사진제공: 고명주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대한민국 훈장증      사진제공: 고명주

 

이후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우쓰노미야 지검 검사로 부임후 검사로 활동하던 중,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 아들만 죽고 어머니는 살아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녀를 살인미수로 기소하는 법률의 미비점과 적용에 대한 문제점에 회의를 느끼고,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인권 변호사 활동을 살펴보면 1911년에 그는 '조선의 독립 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독립 운동을 지지했다.

 

이후 그는 주로 항일 독립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았는데 1919년에는 2.8 독립 선언의 주체였던 최팔용, 송계백 등을 변호해 내란죄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장했으며 1924년에는 도쿄 궁성에 폭탄을 던진 의열 단원인 김지섭의 변호를 맡았다.

 

그의 변호 행적 중 가장 유명한 예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다. 후세 다쓰지는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했을 뿐만 아니라 옥중 결혼 수속을 대신해 주었다. 또한, 후미코가 의문사하자 그녀의 유골을 수습해 박열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안장해 줄 정도로 노력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뒤엔 재일 한국인 사건 및 노동 운동에 대한 변호를 맡았다. 그 후 6.25 전쟁까지 목격한 그는 1953년 9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한국의 독립운동의 변호에 힘써 노력해왔던 것에 대한 공로로 2004년 일본인 최초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018년에는 후세 다쓰지 본인이 직접 변호했던 가네코 후미코에게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일본의 역사기행을 하면서 알고 느끼는 것은 일본인들중 후세 다쓰지와 같은 분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모임, 고려문화원에서 한국의 역사를 바로 알리는 분들.양심적으로 일본이 사과하고 참회해 한다고 글을 쓰는 지식인들.. 이런 노력에에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한국 YMCA에 들러 주재형 총무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2.8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YMCA는 우리 유학생들이 정보를 서로 주고 받으며 모였던 사랑방이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된 것은 당연했으리라 생각되었다.

 

또한 주 총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같은 분들이 함께했고 지금도 많은 뜻있는 일본인들이 대의에 동참하고 참 진실을 전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8 독립선언서 기념비와 필자    사진제공: 고명주

 

아쉽게도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기념관 운영도 어렵고 YMCA가 운영하던 시설도 휴관, 일부는 노후화되어 보완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자료가 더 정리되고 보완되어 기념관으로 더욱 확장 보완되길 소망해 본다.

 

우리가 책으로만 사진으로만 보았던 2.8독립선언의 시발점이 되었던 곳에 찾아가 설명도 듣고 사진 한 장 , 한 장을 직접 보며 생생한 설명을 들으니 이역만리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암울했던 시절, 한줄기 희망의 불빛을 담고 전달하고자 순국한 순국선열의 희생이 더욱 소중하고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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