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쿄로 가다③

서울의 종로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중심 '치요다구'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기사입력 2023/07/26 [15:04]

[기획]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쿄로 가다③

서울의 종로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중심 '치요다구'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입력 : 2023/07/26 [15:04]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3.1독립운동 104주년이 되는 올해 7일 동안 일본 도쿄로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다녀온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고명주 대표. 고 대표는 나라사랑과 독립, 민족혼을 세계만방에 드높인 애국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본과의 상생관계를 복원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치유와 화해를 위해 국내외에 추모전을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일본 도쿄를 다녀와 답사기를 남겼다. <뉴스다임>은 역사의 현장에서 순국선열들의 숨결을 담은 그의 일본 답사기를 올해에도 연재한다. 이번에는 서울의 종로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중심 '치요다구'를 둘러보았다.

 

 

재일본 한국YMCA 2.8 독립기념실을 나와서 본격적으로 도쿄의 중심,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심장이었고, 역사로 채워진 길을 큰 아들의 안내를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회색건물에 높은 빌딩이 있는 메이지 대학교였다. 메이지대학교는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의 스루가다이에 본부를 둔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스루가다이 메인캠퍼스 외에 도쿄에 2개 캠퍼스를 두고 있고,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이쿠타 캠퍼스를 운영한다.  1881년 청년 법률가들이 설립한 메이지법률학교가 기원이다.

 

재일본 한국YMCA 옆에 위치한 메이지 대학 건물    사진제공: 고명주

 

메이지 대학은 '근대 시민 사회를 짊어지는 총명한 젊은이를 육성한다'를 목표로 1881년 프랑스법 자유 민권사상을 공부한 청년 법률가들이 메이지 대학의 전신인 메이지 법률학교(明治法律学校)를 설립했다.

 

대학본부 및 문과 학부, 대학원 등은 문화, 교육 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일본 최대의 학생가인 오차노미즈에 위치하고 있다. 도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형 대학이다. 2013년 4월 제4 캠퍼스 "나카노 캠퍼스"를 설치했다.

 

대한민국 제 1대 대법원 대법원장 김병로 전 대법원장,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리스트 손기정 선수, 영화 감독이자 코메디언인 키타노 타케시를 배출하는 등 정치인, 문학자, 경영자, 언론인, 스포츠 선수, 연예인 등으로서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메이지 대학 쪽에는 한국의 낙원상가처럼 악기상점이 곳곳에 있었다. 세계의 악기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악기들이 상점에 진열되어 있었다. 일본에는 그룹사운드가 많이 활동을 하며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많은 그룹사운드가 활동하고 있지만 그 시장은 제한적이고 요사이는 그룹사운드로 새롭게 선보이는 인기그룹이 80년대에 비해서 적은 편인 것 같다.

 

일본 도쿄의 악기상점    사진제공: 고명주    

 

이어서 왼편은 도쿄역, 오른편은 황궁이 위치한 도쿄의 중심을 걸었다. 이번이 두 번째 이 길을 걸었다. 도쿄역과 황거 주변은 일본에 오면 꼭 걸어보고 느끼면서 역사를 돌이켜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곳이다.

 

1924년 김지섭 의사의 의거와 1932년 이봉창 의사가 도쿄 경시청에서 쇼와 덴노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쿠라다몬 의거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황거(皇居, 고쿄)는 일본 천황과 황후의 거처다.  황거의 총관리는 궁내청이, 보안은 경찰청에 속한 황궁경찰본부(皇宮警察本部)가 맡고,  의료는 궁내청 병원에서 전속 담당한다고 한다.

 

일본 황거(皇居) 풍경1    사진제공: 고명주

 

황거(皇居)라는 명칭(영어명,The Imperial Palace)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8년에 붙여진 호칭으로,  본래는 에도성이 있던 곳이었다.  가끔씩 별칭으로는 Black House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도쿄에 있는 현재 황거는 본래 에도 막부의 에도 성이었다.

 

일본 황거(皇居) 풍경 2    사진제공: 고명주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1868년에 메이지 덴노가 천황의 기존 거처였던 교토고쇼를 떠나 새로이 에도 성에 머무르면서 에도 성은 도케이 성(東京城)으로 이름이 바뀌고 도쿄의 궁전이 되었다.               

 

이듬해인 1869년 메이지 덴노의 두 번째 도쿄 행차 때 천황이 앞으로 도쿄에서 체류할 것을 발표하면서 도케이 성은 황성(皇城)이 되었다.

 

일본 황거(皇居) 해자와 도쿄 중심 풍경    사진제공:  고명주       


황성을 둘러싸 적병들을 물리치고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판 해자의 물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물속에 비친 건물들이 일본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일본 황거(皇居) 주변의 풍경    사진제공: 고명주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심 속의 정원인 히부야 공원(ひびやこうえん)이 있다. 도쿄 중심 지역에 있는 이 공원은 1903년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정원으로 문을 열었다. 에도시대 이 일대는 제다이묘의 근거지였고, 메이지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본군 연병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2·8 독립 선언을 낭독한 공원으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공원이다.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즐기고 있는 일본 히부야 공원 풍경    사진제공:  고명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무를 벌채해 황폐화되었으며, 금속 회수 때문에 건축물은 모두 철거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공원을 복구해 1961년에 다시 개장했다고 한다. 공원 조경의 대부분은 일본과 독일의 정원 양식으로 화단에는 봄에 피는 꽃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히부야 공원에서 걸어가면 멀지 않은 곳에 행정부처가 모여 있는 국회의사당이 있다. 아베 수상이 불의에 사고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후 국회의사당이 입접한 수상관저는 경비가 더 삼엄해졌다고 한다.

 

 

일본의 중심 국회의사당                                                                         사진제공:  고명주      

 


오늘 도쿄의 심장을 걸으며 우리 한국의 심장인 서울과 많이 비교되었다. 같은 점은 있고 다른 점도 참 많았다. 서울은 주위에 산이 많지만 일본 도쿄는 산다운 산이 없는 것이 크게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각 나라마다 지형과 역사의 특징을 살려 도시의 품격을 높혀가고 있다.  도쿄도 그러했다. 

 

대한민국의 서울은 아름다운 산을 가지고 있는 멋진 도시이며 구비 구비 한강이 흐르고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다른 나라에 남부럽지 않은 많은 명소를 가지고 있다. 

 

서울의 광화문, 종로, 중구 등은 역사적인 장소이며 문화의 저력 또한 대단하다. 그것을 얼마나 보존하고 함깨 공유하느냐의 여부도 고민도 해보고 세계적인 수도들의 장점을 지속적으로 접목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기획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