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순국선열 유적지를 찾다②

서울 마로니에공원, 효창공원,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기사입력 2023/09/15 [13:25]

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순국선열 유적지를 찾다②

서울 마로니에공원, 효창공원,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글/고명주(순국선열추모 글로벌네트워크 대표) | 입력 : 2023/09/15 [13:25]

 

김상옥 의사 동상이 있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대학로에는 의열단 김상옥(金相玉,1890.1.5 ~ 1923.1.22) 의사의 동상이 있다. 김상옥 의사는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인물이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일본 식민통치의 상징이었다. 거사 후 잡히지 않고 은신했으나 발각되어 효제동에서 일본 경찰과 접전 끝에 자결로 순국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나와서 걷다 보면 마로니에 공원이 나오는데 이곳에 김상옥 의사를 기억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 동상  사진제공 : 고명주

 

효창공원

다음은 효창공원이다.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시립공원으로 지리적으로는 효창동 외에도 청파동 2, 마포구공덕동과 신공덕동까지 영역이 있으며, 일반적 공원과는 달리 호국보훈 관련 시설 및 유적지들이 있어 호국적, 역사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효창공원은 1989년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다.

 

▲ 효창공원에 모셔있는 3의사 묘와 안중근 의사 가묘  사진제공 : 고명주 

 

해방 후인 1946년 박열,이강훈 등 아나키스트계 독립 운동가들이 3의사의 유골 수습을 촉구해  '3의사국민장봉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중국상하이훙커우공원(지금의 루쉰공원)에서 당시 일본왕 히로히토의 생일 행사 때 물통 폭탄을 던진 매헌 윤봉길 의사와 일본도쿄에서 히로히토천황을 폭사(爆死)시키려다가 미수에 그쳐 일본군에 의해 사형을 당했던 이봉창 의사,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주중(駐中)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 했다가 실패해 옥사(獄死)했던 구파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국내에 공식 운구되어 삼의사묘(三義士墓)에 안장되기도 했다.

 

매헌 윤봉길 의사 묘  사진제공 고명주

 

이봉창 의사 묘  사진제공: 고명주 

 

구파 백정기 의사 묘  사진제공 : 고명주 

 

실제 삼의사묘에 가보면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가 있는데, 그 묘소에는 1909년 중국 하얼빈 기차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 불리웠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유골이 안장될 묘소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되기 전 유언에서 "내가 죽으면 내 유골을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의 독립이 되거든 조국으로 나의 유골을 운구해 달라"라고 남겼지만 순국한 지 114년이 지나고 해방된 지 7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커녕 유골의 행방도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는 중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골이 안장될 묘소(가묘)   사진제공 고명주

 

의열사는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인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과 임정주석 김구선생 및 3의사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또한 조국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백범 김구선생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다. 1949년에는 백범 김구가 서울 경교장에서 암살당함에 따라 국민장을 통해 그의 시신이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2002년에는 김구의 생애와 항일 업적 등을 기념하는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백범 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교육운동! 의열투쟁! 통일투쟁 등의 위대한 걸음을 느낄 수 있다. 백범기념관 마지막에 나오는 영상에는 너무 유명한 백범 김구선생의 어록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백범 김구 선생  사진제공: 고명주

 

☆☆ 백범 김구 선생 어록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탑골공원

우리가 꼭 가봐야 할 곳은 탑골공원과 천도교 중앙회관이다. 서울특별시 종로 2가에 있는 탑골 공원은 3 · 1운동 때에 손병희 선생을 비롯하여 한용운 등 애국지사 33인이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던 민족해방운동의 발상지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곳은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고, 조선 전기(1464)에는 유명한 원각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국보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고, 보물인 '원각사비' 등 문화재가 많이 있다. 조상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사적공원(史蹟公園)으로 면모를 바꾸고 1992년 이곳의 옛 지명을 따라 '파고다 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칭했다.

 

종로에 있는 한국 최초의 공원인 탑골공원 내 팔각정  사진제공 : 고명주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사진제공 : 고명주

 

기미독립선언서 비문  사진제공 : 고명주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소파 방정환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 선생 이전의 천도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19세기 중반인 1860년 경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자락에서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고 동학을 창시했다. 해월 최시형이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그 세력이 점차 확장되어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으로 분출되었다.

 

1898년 최시형의 죽음 이후 19053대 교주였던 손병희가 교명을 천도교로 바꾸었으며, 그 중앙본당이 바로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사진제공 : 고명주      

  

천도교 중앙대교당[天道敎中央大敎堂]는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천도교의 요람지로 197812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당시 3대 교주이던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가 건평 400평 규모로 짓고자 계획했으나 조선총독부의 규제로 축소, 재설계해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석재는 창신동 돌산에서 채석해 쓰고 철제 앵글재는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했으며, 건축공사비는 교인 각 세대당 10원씩의 성금을 갹출 30만 원을 거두어 27만 원을 공사비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3 ·1운동 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3대 건축물로 꼽혔던 건물이다.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이 되면 참 좋겠다.

 

이곳은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운동이 싹튼 곳이기도 하다

 

방정환(方定煥,1899.11.9.~1931.7.23.)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아동문화운동가어린이 교육인사회운동가이며 어린이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1957년 방정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소파상'이 제정되었다. 1958년 고려대학교에서 명예 졸업장이 추서되었으며 이후 1978년 금관문화훈장,1990년 건국훈장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971년에는 색동회가 주관하고 또 전국 어린이들의 성금을 기금으로 하여 2년간 제작한 동상이 남산 어린이회관 옆에 세워졌다. 1983년 어린이날 망우리 묘소에 소파방정환 선생의 비()가 세워졌으며,1987년에는 독립기념관에 그가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새긴 어록비가 건립되었다.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운동이 싹튼 곳   사진제공 : 고명주

 

 

그 외에도 수도 서울 곳곳에는 순국선열의 나라사랑의 눈물과 피가 뿌려져 있는 곳이 참으로 많고 많다. 우리는 더 많이 기억해야 하고 찾아가야 한다. 이직도 순국선열은 슬픔속에서 나라사랑의 꽃이 피어 있길 소망하고 이름을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광복78주년! , 80주년이다.

 

늘 순국선열의 순국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자랑스런 자유대한민국인으로서 그분들의 유적지를 찾아 나라사랑을 배워보면 어떨까. 바로 우리동네에 있는 순국선열 유적지를 찾는 것에서 시작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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