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임인사이트]홍콩과 중국 선전, 가깝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Charlie Kim 기자 | 기사입력 2016/04/09 [11:00]

[다임인사이트]홍콩과 중국 선전, 가깝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Charlie Kim 기자 | 입력 : 2016/04/09 [11:00]

기자는 34일 동안 홍콩과 중국 선전(深圳)을 오가며 취재를 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얼굴을 지닌 홍콩과 선전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경제협력을 통해 물리적으로는 가까워진 관계였으나 문화와 사고의 차이로 인해 넘어야 할 장벽이 아직 높아 보였다. 북한과 남한이 통일이 됐을 때도 사회적 통합과 결속이 휴전선보다 더 넘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경제협력'으로 20세기 반목의 역사 넘어 개발협력 파트너로!

2014 9월 말에 일어난 홍콩의 우산 시위 (Umbrella Movement)를 떠올려보자. 중국이 주도하는 행정장관 선거 방식, 즉 친()중국 성향의 정치인사들을 홍콩 정부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정책에 반대하며 8만여명의 홍콩의 학생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뉴욕의 맨하튼을 연상시키는 홍콩의 중심가, 몽콕(旺角), 코스웨이베이(銅鑼) 등에는 상업이 마비될 정도로 학생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숙식까지 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학자들까지 동참해 시위를 도왔다.

1 6개월이 지난 지금, 같은 장소에 도착한 기자는 항상 바쁘고 쇼핑객들로 붐비는 홍콩의 이미지를 직접 느낄 수 있었지만 바로 이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중국은 14억명의 인구를 자랑하며 티베트, 베트남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라를 통치하는데 있어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제2의 천안문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항상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우산 시위 당시, 홍콩 학생들에게 위법이라고 말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따라서 아직도 홍콩과 중국간의 정치적 반목과 문화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중국의 내정간섭이 강화될수록 제 2의 홍콩 우산 시위는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흥미로운 점이 많다. 먼저,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과 중국의 등소평은 1984년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홍콩의 주권 반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은 홍콩의 번영과 안정유지가 중국의 경제 현대화에 도움이 된다며, 50년 후 중국의 선진화를 목표로 홍콩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따라서, 수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금융거래가 자유롭고 안정화된 홍콩을 통해 중국에 투자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였고, 중국과 홍콩은 경제협력을 매개로 더욱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사이가 됐다.

중·영 연합성명'(·聯合聲明)에 따르면, 1997 71일부로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되 50년 뒤인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 원칙에 따라 홍콩에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시행하지 않는 고도의 자치와 집행권을 보장하도록 명시돼 있다. 

2047년까지 이제 30년 정도가 남았지만 벌써부터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세대가 있는가 하면, 홍콩에 중국의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오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오히려 영국의 지배를 다시 받고 싶어하는 단체들도 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지식을 가지고, 홍콩과 선전을 여행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의 통로를 만들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통일정책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1990년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 후 북한과의 경제협력의 확대로 남북한 통일을 이루려고 했던 논리는 사실 매우 단순하고 순진한 발상이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은 통일은 경제와 정치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한반도는 현재 국가간 경제협력의 수준이 대단히 높은 반면, 안보 분야는 아직도 냉전시대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홍콩과 선전 두 도시는 지하철로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방식과 소비생활은 정말로 달랐다.

경제협력을 통해 서로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을지라도 문화적 차이로 인해 좁혀지지 않은 장벽이 높아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과연 북한과 남한이 통일이 됐을 때도 사회적 통합과 결속이 휴전선보다 더 넘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평화와 공존'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서로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통일의 잠재성은 무한하고 대한민국 미래세대에게 대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홍콩과 선전, 다르지만 경제협력을 통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조금씩 더 문을 열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취재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쇼핑천국, 화려한 야경의 홍콩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선전, 이 지역 젊은 세대들의 열정 등이 인상깊게 남아 깊은 울림으로 이어졌다. 

 

▲ 홍콩 국제 공항 근처에 있는 한 작은 아울렛몰, 국제도시 홍콩을 실감할 수 있다     © 뉴스다임

 

▲ 홍콩식 라면(Noodle), 돼지사골 육수에 탱탱한 면발 그리고 야채와 함께 버무려 먹는 맛이 별미!     ©뉴스다임

 

▲ Good Friday 공휴일에 쇼핑객들로 넘치는 아울렛몰     ©뉴스다임

 

▲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홍콩의 별장, 타이탐 (Tai Tam)     ©뉴스다임
▲ 2003년 홍콩을 뒤흔든 사스(SARS)의 근원지였던 타이탄. 지금은 깨끗히 청소돼 냇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변화됐다.     ©뉴스다임

 

▲ 홍콩에서 산 물건을 중국 선전(深圳) 으로 가지고 가서 팔려고 하는 중국 무역상들.     © 뉴스다임
▲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딤섬가게, 아침부터 딤섬을!     © 뉴스다임
▲ 변화하는 선전, 투자진흥청 및 산업박물관 건물     © 뉴스다임
▲ 선전 역사 박물관과 한눈에 보이는 중국 선전 지도     © 뉴스다임
▲ 자본의 힘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로 첨단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선전.    © 뉴스다임
▲ 1977년까지 선전의 대부분은 논밭이었으며, 홍콩 농부와의 소득격차는 무려 20배!     © 뉴스다임
▲ 1978년 홍콩으로 넘어가지 못해 오열하는 이민가족들     © 뉴스다임
▲ 외부디자인 및 내부설계까지 훌륭한 선전 시립 도서관     © 뉴스다임
▲ 먼 항해를 나가기 전 제사를 올렸던 청나라 관습을 재현.     © 뉴스다임
▲ 도서관 계단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는 선전 학생들     © 뉴스다임
▲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중국 기업들 빌딩    © 뉴스다임
▲ 선전. 자유롭게 음악공연을 하고 있는 밴드와 이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 뉴스다임
▲ 뉴욕 맨하튼의 미드타운(midtown)을 연상시키는 선전의 건물들과 공원     © 뉴스다임
▲ 홍콩 센트럴에서 보이는 홍콩의 야경, 런던아이가 연상되는 대관람차     © 뉴스다임
▲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     © 뉴스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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