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어로 삶을 나누는 영어강사 '곤쌤'

“영어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영어를 좋아해 보세요”

박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18/03/09 [23:13]

[인터뷰]영어로 삶을 나누는 영어강사 '곤쌤'

“영어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영어를 좋아해 보세요”

박은영 기자 | 입력 : 2018/03/09 [23:13]

20대 때 배우의 꿈을 안고 헐리우드로 혈혈단신 날아갔다가 보기 좋게 실패해 돌아왔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영어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ABC를 가르치는 과외로 시작했다가 종로의 대형 어학원, 방송까지 진출했다. 그렇지만 “영어는 역시 삶을 나누는 것”이라는 소박한 말을 하는 영어강사 김동곤(36) 씨. 뉴스다임은 남다른 길을 걸어온 영어강사 김동곤씨, 일명 '곤쌤' 을 만나 인생과 영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전직 영화배우이자 현직 영어강사 김동곤 씨     © 뉴스다임 박원빈 기자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올해 36살의 영어 강사다. 배우를 하다가 20대 때 ‘헐리우드의 꿈’을 안고 미국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 영어강사가 됐다. 

 

-배우를 하다가 돌연 영어 강사가 된 계기는?

 

▶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치 않은 기회로 무대에 서게 됐는데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때 화내는 연기를 했는데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사춘기 때 많이 힘들었고 탈출구가 필요했는데 무대에서 뭔가 합법적으로 분노를 뿜어낼 수 있다는 것에 꽂혔다. 그렇게 연기에 빠져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이후 유명하진 않았지만 여러 단편영화와 연극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꽤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과 공동주연을 맡아 장편영화를 찍었다. 독립장편영화였는데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후 바로 헐리우드에 갔다. 한국에선 무명배우로는 생활이 어려웠고 학교도 장기휴학으로 거의 재적상태라 막막한 마음에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기대와 달리 막상 미국에 가서 잘 안 됐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거기서 들은 얘기가 “여기까지 온 용기는 가상하나, 아무리 용기가 좋아도 실력이 없으면 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걸로도 만족했다. 내가 늘 꿈꾸던 헐리우드 오디션장에서 백인, 흑인들과 같이 같은 대본을 보면서 준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연기를 해도 재미가 없었다. 나란 사람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쫓아다니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더 이상 연기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생활을 해야 하니, 그나마 할 줄 아는 영어를 초등학생들에게 ABC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게 소문이 나서 영어학원에 취직하고 중고등학교 방과 후 수업 강사도 하다가 나중엔 영어 방송도 하고 종로에 있는 대형 어학원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 지금은 기업까지 진출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일이 굉장히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어 만족하고 있다.

 

 

 

 

-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 주로 영어회화 수업을 하는데, 영어로 대화를 하다보면 자기 삶을 이야기하게 된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한테도 얘기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얘기들을 나한테 풀어놓더라. 그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힘이 된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면서 이 일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러다보니 영어 강사뿐만 아니라 상담사 비슷하게 돼버렸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게 된 계기가 있었다. 미국을 갔다 와서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나에게 남은 게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연기만 바라보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연기가 나에게 무의미해졌고 다른 건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인생이 불안해졌다. 남들은 20대 때 회사에 취업하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는데, 3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무 것도 없는 나 자신을 보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느 날 잠도 안 오고 해서 인터넷에 서칭을 하는데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더라. 너무 힘든 상황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를 받았다. 그때 그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아무런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들어줬다.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데에도 그 영향이 굉장히 크다. 학생들의 이야기에 토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준다. 죽지 않고 살아보려고 받았던 심리 상담과 먹고 살려고 시작했던 영어가 결합돼서 학생들에게 의도치 않게 좋은 영향을 주게 됐다.

 

- 곤쌤만의 필승 교수법이 있다면?

 

▶ 영어 공부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언어적 부분과 다른 하나는 내용적 부분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돼야 영어를 잘할 수 있다. 초급자에게는 언어적 부분 즉 발음, 문법, 어휘 이 세 가지를 가르친다. 한편 언어적인 부분을 잘해도 내용이 없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를 많이 아는데 “본인 삶의 모토가 뭡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 중고급자들한테는 그게 목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만의 교수법이라고 한다면 기술적인 면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How was your day?)”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보통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유일하게 그 사람들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게 영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어의 언어적 부분보다는 70%가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수업철학을 갖게 된 데는 나를 가르쳤던 사수인 '문단열'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문 선생님은 저서가 100권 이상 되고 EBS에서도 스타강사로 활약하셨는데, 그분의 오른팔처럼 따라다니면서 교수법을 많이 배웠다. 문 선생님은 항상 “언어에 인생을 끌고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언어 가운데 꺼내놔야 그 표현이 오래 기억되고 잔상에 남지, 남의 이야기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어를 삶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 영어로 삶을 나누는 것, 그것이 내 수업의 포인트다. 

 

 

 

 

- 까다롭고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들은 어떻게 가르치나? 

 

▶ 영어에 트라우마가 있는 학생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 못해서 많이 맞았거나 어릴 때 영어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은 사람들은 커서도 영어를 싫어하고 평생 가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정반대였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내가 앉은 분단의 학생들에게 전부 돌아가며 영어문장을 읽어보라고 시키셨다. 그러다 내 차례가 돼서 읽었는데 선생님이 “동곤이가 발음이 좋네”하고 공개적으로 칭찬해 줬다. 그때 반 아이들이 갑자기 “와~” 하고 환호를 해줬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때부터 영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아니까 내가 그때 영어 선생님께 받았던 걸 학생들에게 해 주게 된다. 조금만 잘해도 “오, 괜찮다”, “발음이 나쁘지 않다” 이렇게 칭찬하면서 감정을 바꿔주는 거다. 영어가 싫은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감정, 칭찬, 재미를 계속해서 불어넣어줘야 한다. 영어에 대한 감정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절대 공부를 하지 않는다. 나는 강사로서 ‘어떻게 하면 영어가 재미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어를 하면서 웃고 감탄사가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만 연구한다. 교육에 있어서 이성적 부분 말고 감성적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학교 수업에서는 시험 점수 높이는 교육만 했지, 감성적인 것엔 전혀 신경을 안 쓴다. 결국 감성 위주로 수업을 계속 하다 보니 영어를 싫어하던 학생들이 점점 바뀌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서 잘하시는 분도 많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들어가면,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가 있으면 그 드라마를 공부하는 거고 좋아하는 팝송이 있으면 그 노래 가사부터 시작하는 거다. 좋아하는 관심사 위주로 이야기하고, 철저하게 그 사람이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것으로 매 수업마다 반복하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느새 영어는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공부도 결국 감성 게임이기 때문에 학생의 감성을 빨리 캐치해서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적으로 자극을 주면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

 

 

 

- 영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 보통 중고등학교 때는 보고 듣는 입력식 영어 수업을 하는데,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건 쓰고 말하기다. 쓰고 말하는 출력식 영어는 액티비티(Activity), 운동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대본을 만들어서 역할을 나눠 연기를 하는 역할극과 실제 운동처럼 영어를 주고받는 수업을 많이 한다. 또 퀘스쳔북(Question Book)을 만들어서 주제별로 질문을 많이 던진다. 내가 주제를 던지면서 계속 대화를 끌어내는 거다. 입이 움직이는 만큼 영어가 늘기 때문에 내가 연구하는 건 이 사람이 계속 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이전의 교육은 선생님이 100을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했는데 그와는 정반대다. 전통적 영어교육에 익숙한 사람은 더러 적응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외우는 것에 길들여져 있고 말하는 걸 어색해 한다. 

 

-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핵심적인 조언 한 마디 한다면?

 

▶ 진실은 잔인하다.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게 매번 힘들다. 

“영어는 꾸준히 오래오래 공부하세요”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오래오래 공부합니까, 당장 1년 안에 실력을 쌓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어에 재미를 들이면 가능하다. “영어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영어를 좋아해 보세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20년 전 쯤 일본 게임이 불법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한글 매뉴얼도 없고 모든 게 일본어로 돼 있었는데 그 게임이 너무 좋아서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한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 사람은 게임의 끝판까지 마스터했는데 덩달아 자동으로 일본어까지 마스터했다. 이처럼 내 감성과 영어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체만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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