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대학로 아닌 농촌 택한 '농사짓는 오빠' 채병룡

박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18/07/05 [11:01]

[인터뷰]대학로 아닌 농촌 택한 '농사짓는 오빠' 채병룡

박은영 기자 | 입력 : 2018/07/05 [11:01]

전주대학교 연극영화과 05학번으로 입학한 연극을 사랑한 청년은 2011년 졸업과 동시에 농부가 되었다. 6만평 논에 벼농사를 짓고, 이모작으로 찰보리도 제배한다. 겨울 김장철엔 직접 키운 배추 1만 포기를 ‘절임배추’로 생산, 판매까지 한다. 노지 3천 평에는 고추와 잡곡들을 소소(?)하게 키우기도 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계기로 농사를 짓게 됐을까? 그리고 청년농부가 생각하는 농사라는 직업은 어떨까? 뉴스다임은 스스로 ‘농사짓는 오빠’라 부르는 32살의 청년농부 채병룡 씨를 만나보았다. <편집자주>

 

 

▲ 전북 군산의 '농사짓는 오빠' 채병룡 씨     © 박원빈 기자

 

 

연극영화를 전공하다가 돌연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농사를 지은지 벌써 8년차가 돼가고 있지만,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농사를 짓게 됐냐’는 것이다. 솔직히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대학 다닐 때는 졸업 후 계속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4학년 졸업반 때 지금의 아내인 당시 같은 과 커플이었던 여자친구에게 “졸업하고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하고 싶은데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여자친구와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게 됐다. 

 

처음 1년 동안은 너무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짐 싸들고 서울로 올라가서 연극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앞치마 입고 고무장갑 끼고 배추를 씻고 있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자꾸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나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마음을 조금씩 다잡으며 농사일을 하다 보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서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지금은 너무 재미있고 앞으로가 무척 기대된다. 

 

 

▲ 채병룡 씨는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다수의 공연에 출연했다.     ©사진제공: 채병룡 씨 

 


농사 짓겠다고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부모님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다. 함께 농사 지으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 농촌은 일손이 부족한데 제가 들어오니 힘이 많이 되셨던 것 같다. 아버지가 굉장히 과묵한 편인데 “우리 가족끼리 참 재미있게 일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내가 농사에 뛰어들면서 실질적으로 좋은 점도 생겼다. 예전에 부모님끼리 농사 지을 때는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그저 단체로 수확물을 농협에 갔다주면 그곳에서 책정한 가격대로 받는 게 다였다. ‘저런 방법밖엔 없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내 방법대로 SNS를 활용해서 농사짓는 과정을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올리다보니 직거래 고객이 많이 생겼다. 생산자 직판장(로컬푸드)에 입점해서 내가 자신 있게 내놓은 상품을 내가 정한 가격에 팔기도 한다. 한마디로 제 값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농사 짓는 게 힘들진 않나?

 

- 우리 세대는 복 받은 것 같다. 사실 부모님 때에 비해 기계로 인력을 상당 부분 대체하기 때문에 많이 편해졌다. 옛날엔 장화를 신고 손으로 직접 모를 심었지만 지금은 이앙기를 타고 다니면서 모를 심지 않나. 물론 기계가 못하는 부분은 가서 직접 삽질도 하고 몸을 써야 하지만 농업 관련 기술이 정말 많이 발달했다. 요즘은 GPS로 위치를 지정해 모 심는 무인 이앙기도 나왔다. 현재 기술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 앞으로 10년 20년 뒤엔 농사 짓기가 얼마나 더 편해지겠는가. 농사 짓다가 골병 든다는 말은 우리 세대와는 안 맞는 표현 같다.

 

 

기술의 발전으로 좋아진 농사환경 말고, 농사의 어떤 점이 좋은가?

 

- 퇴직이 없는 게 가장 큰 메리트라 생각한다. 동네에 연세가 80~90 되신 어르신들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지으신다. 반면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 과장의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벌써 회사에서 나가라는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 반면 농사는 직장상사 눈치 볼 일 없고 퇴직도 없다. 또 자기가 한 만큼 벌 수 있는 게 농업이다. 내가 적당히 일을 하면 적당히 버는 것이고 잠을 줄이면서 그 시간에 일을 하면 그 만큼 더 많이 버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

 

 

▲ 부인 방소영 씨, 딸 수아와 함께     © 사진제공 : 채병룡 씨



반면 어려운 점도 있을 텐데 귀농하려는 청년들에게 해주고픈 조언이 있다면?

 

- 내가 처음 농사 지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내 또래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다. 와서 1~2년 동안은 종일 부모님과 일하고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다른 인간관계가 없었다. 그러다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에 교육을 받으러 다니다보니 젊은 친구들을 조금씩 만나게 됐다. 그 친구들과 연락도 주고받고 서로 도와주면서 편하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괜찮다. 이런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고 귀농을 준비하면 좋겠다.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꿀팁이 있다. 지자체의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에 가면 농업인을 위한 교육이 많이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과수, 원예, 곤충 등의 재배 방법부터 마케팅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요즘은 6차산업(1차 생산, 2차 제조 및 가공, 3차 체험·관광 및 서비스를 복합한 고부가가치산업)에 관련된 교육이 가장 뜨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사는 자기가 뿌린 만큼 얻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한 사람은 그만큼 빛을 볼 것이고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기대만큼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 그건 내가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보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이 하시던 농사를 이어가려는 청년들에겐 부모님의 역할이 정말 크다. 부모님들은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 오셨기 때문에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계시다. 그러나 청년들은 여러 가지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때 부모님들이 기존에 해오던 방법들만 고집하면 서로 생각이 안 맞아 자식들이 다시 농촌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모님은 우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가만히 지켜봐주셨다. 내 생각대로 했다가 실패한 적도 많았지만 부모님께서 묵묵히 지켜봐주셨기 때문에 마음을 빨리 잡고 뿌리내릴 수 있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 그동안 하던 절임배추를 사업화해서 5년 후에는 김치공장을 지으려고 한다. 절임배추는 겨울 한철이지만 김치공장은 4계절 내내 돌아가기 때문에 수익이 안정적이다. 

 

쌀은 인구가 점점 감소하면서 소비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량은 더 늘어나니 앞으로 쌀값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반면 절임배추 주문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 배추를 절일 시간이 없으니 절임배추를 찾는 고객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치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전망이 좋다. 

 

세월이 더 지나서 지금 계획한 것들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다시 연극을 하고 싶다. 아내도 연극영화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함께 극단을 만드는 게 우리의 꿈이다. 우리가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하고 단원도 모집하면서 극단을 운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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