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졌지만 잘 놀았다!" 선거를 축제처럼 '바른미래당 김건우'

박은영 기자 | 기사입력 2018/07/10 [14:24]

[인터뷰] "졌지만 잘 놀았다!" 선거를 축제처럼 '바른미래당 김건우'

박은영 기자 | 입력 : 2018/07/10 [14:24]

선거운동에 유세차가 없다? 그저 집게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진정성으로 온동네 쓰레기를 줍고 주민들과 만났을 뿐! 유세차, 로고송, 마이크, 확성기 없는 ‘매너모드 선거운동’을 벌이던 28살 청년은 선거가 끝나고 동네 어르신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선거에 떨어진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선거운동 동안 찾아뵌 동네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선거캠프 사무실이 초등학생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세상에 하나뿐인 선거를 치른 바른미래당 ‘김건우’ 서울 중구 구의원 전 후보를 만나 그만의 선거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 '매너모드 선거운동'과 동네 환경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건우 씨     © 사진제공 : 김건우 씨


  

123가지의 직업을 관통하는 가치 ‘따뜻한 공동체’

 

이전부터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그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추진하면서 살아왔다. 대학에 입학할 땐 졸업하기 전까지는 직업을 정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미리 진로를 정해버리면 거기에 얽매여 억지로 행동하고 계산하면서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작년에 졸업하면서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해왔던 여러 활동들을 관통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여기에 ‘주변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김건우’ 하면 떠오르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허브농장CEO부터 해서 카페주인, 정치인, 여행 작가, 방송인 등 무려 123가지의 답변이 왔다. 그중에 흥미로운 것은 ‘직장인’이란 응답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답변들 가운데 내가 찾아낸 것은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가치는 ‘공공의 가치, 따뜻한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그외 일련의 사건들이 있은 후 바른정당이 출범했다. 바른정당이 향해 가는 노정을 보면서 처음으로 마음 깊이 지지할 수 있는 정당이라 생각했다. 입당하고 나서 알게 됐지만, 내가 추구해온 가치인 ‘따뜻한 공동체’라는 가치가 당헌당규에 들어가 있었다. 

 

 “건우가 한다면, 정치는 또 하나의 재미난 프로젝트”

 

당에서 청년정치학교와 목민관학교라는 청년정치인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와중에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또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같은 제안을 하면서 “건우 네가 하면 정치가 또 하나의 재미난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말에 나 또한 깊이 동의했다. ‘구의원’은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알리려고도 안 한다. 구의원으로서 동네의 크고 작은 일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며,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동네다운 동네'를 만드는 게 구의원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또 그러한 표본을 제시하고 싶어 출마를 결정했다.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깨끗한 시작, 김건우 펀드'     © 사진출처 : 김건우씨



전재산 30만 원인 청년의 좌충우돌 지방선거 도전기

 

흔히 선거와 정치라 하면 돈, 조직, 경험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청년들이라면 이 세 가지 모두가 당면과제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선거구에 관한 조직도 없고, 경험도 없었고, 구의원을 결심한 그 순간에도 내 통장에는 잔고가 30만 원이었다. 사실 출마 자체가 무모한 일이고 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여건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바가 굉장히 컸다.

 

우선 3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선거 출마 기탁금 자체가 2백만 원이고 정당의 공천심사비용도 있고, 선거사무소도 얻어야 하고, 그냥 숨만 쉬어도 돈이다나갔다. 결국 돈선거 안하기로 결심, 2천만 원 안에서 끝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크라우드펀딩으로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깨끗한 시작, 김건우 펀드’라고 이름을 지어 SNS에 올렸는데 불과 5일만에 2,535만 원이 모였다. 득표율이 15%를 넘겨야 선거비용이 보전되는데 정치신인이고 청년후보로서 15%를 넘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50여 명의 투자자들이 그것도 닷새 만에 2천만 원 훌쩍 넘는 금액을 투자한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투자자들 중에는 고액을 하신 분들도 꽤 많았다. 그중 최고 금액이 580만 원을 투자한 직장인 친구다. 그 친구가 투자금을 주면서 “현재 나는 인생을 주어진 대로 살아가지만, 그것을 깨고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며 “너의 도전이 나에게도 감동과 깨달음을 주고 삶의 동력이 된다”고 말하더라. 또 한 친구는 펀드를 시작하자마자 2천만 원을 한 번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혹시나 투자금이 얼마 모이지 않아서 김건우만의 방식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를 떠나 너다운 과정에 집중하라”며 당선이 안돼 서 보전을 못 받더라도 그 금액을 저에게 빌려주겠다고 했다. SNS에서 만난 공익근무요원인 친구는 월급 30만 원을 전부 다 투자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말하더라. 그런 응원들이 나에겐 너무나 즐거운 책임감이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선거운동원들

 

내가 출마한 중구 라 선거구에는 바른미래당에서 구청장과 시의원을 공천하지 않았다. 이건 구의원에겐 사망선고와 같은 일이다. 다른 당에선 구청장 선거운동원, 시의원 선거운동원까지 합세해 30~40여 명씩 모여 다닐 때 나에겐 8명만이 선거운동에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선거 운동 기간 13일 동안 얼굴도 모르는 일반 선거운동원 8명을 고용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내가 도전하는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100% 나를 지지하고 함께 뛰어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후보를 진심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국 주변의 친구, 친구 동생, 군대 후임 등 20대 중후반의 친구들 16명을 모으게 됐다. 이들이 13일 내내 시간을 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표를 구성해 시간표대로 교체해가면서 투입됐고, 평일은 3~4명 있는 날도 있었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게 유권자들에겐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이라 생각했다. 선거운동에 함께 한 친구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한 일이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이었다며 좋은 반응이었다.

 

▲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사진제공 : 김건우 씨

 

시끄러운 유세차는 No! 선거운동도 매너모드를 지키자!

 

선거운동 하면서 유세차량은 쓰지 않았다. 당선이 되더라도 득표율 15%를 넘기면 선거비용을 보전 받게 되는데, 이것도 결국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유세차가 다니면서 시끄럽게 로고송을 틀거나, 확성기를 이용해 유세하면 시민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귀를 막는다. 결국 유세차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래핑된 차량도 쓰지 않고 오직 발로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시끄러운 유세차, 로고송, 마이크, 확성기 없는 ‘매너모드 선거운동’을 내걸었다. 

 

유세차 없이 어떻게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선거운동 기간은 구의원이 됐을 때 어떤 구의원의 모습으로 일할 지에 대해 보여드리는 기간이라 생각했다. 구의원이 되면 유세차량도 안 할 것이고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때 이제껏 후보들이 해왔던 선거운동방식은 연기(演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동네 환경미화였다. 집게와 봉투를 들고 2~3명씩 조를 나눠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웠다. 어른들을 만나거나 주민들을 만나면 인사 정도만 드리고 쓰레기를 주웠는데 정말 반응이 좋았다. 시끄럽게 유세하지 않고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없이 ‘매너모드 선거운동’ 피켓을 매고 쓰레기를 줍고 다니니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해주셨다. 우리가 지나가면 다른 후보들은 유세차량의 방송 볼륨을 줄이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상인들 같은 경우는 여기 유세차 있다고 우리 보고 와달라고 할 정도였다. 

 

구의원다운 구의원, 효율성보다 진정성을 택하다

 

대부분의 지역활동을 할 여유가 없으신 주민들은 평소 구의원을 만날 기회조차 없다. 결국 지역 토호세력들만의 구의원이 돼버렸고, 그러다보니 구의원 무용론까지 나오게 됐다. '구의원다운 구의원'이 돼야겠다 생각했고 어르신들에게는 든든한 손자 같은, 부모님 세대에는 믿음직한 아들 같은, 청년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이들에게는 꿈이 되는 것이 구의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점심 때 항상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도 하고 실버체조도 함께 했더니 정말 손자처럼 생각해주셨다. 대다수의 후보들은 잠깐 가서 명함을 나눠주며 인사만 하는 정도인데, 우리는 한번 가면 한두 시간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른 후보들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며 그 시간에 사람들을 더 만나러 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진정성을 택했다.

 

▲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 사진제공 : 김건우 씨

 

또 하나, 선거운동 때 초등학생들에게 공을 많이 들였다. 다른 후보들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사도 안한다. 구의원은 모두의 구의원이지, 유권자들만의 구의원이 아니지 않나. 그러면서 선거공약으로는 보육이 어쩌구 교육이 어쩌구 하는 게 모순돼 보였다. 우리는 출근길 아침인사를 마치면 바로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인사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나중엔 부모님들이 “초등학생에게도 이렇게 정성껏 인사하는 후보는 처음“이라며 응원과 지지를 해주셨다. 지금도 사실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건우형은 왜 떨어졌을까’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해보고 싶다. 아이들이 선거 기간에 늘 사무실에 와서 지적했다. “형, 지금 명함이 이만큼 남았어요. 빨리 움직여야지, 이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비타민음료 그만 주세요, 냉장고가 허술하니까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안 들잖아요!”

 

이런 선거운동의 반응이 ‘바람이 분다’는 표현처럼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정말 손자처럼 아들처럼 생각해주시고, 선거가 임박했을 땐 나보다 더 긴장하고 걱정해주셨다. “선거 끝나면 네 얼굴 못 봐서 어떻게 하냐”라며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나다운 방식으로 13일의 선거운동을 진행했고 그 결과 득표율은 17.7%, 3,129명이 나를 찍어주셨다. 당선은 안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였다. 보통 개인이 끌어낼 수 있는 지지율을 5% 이내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당 지지율이 6~8%였으니 내가 끌어낸 득표율이 10%에 달한 것이다. 

 

당이 아닌 ‘김건우’를 뽑아주신 지역 주민들

 

나를 뽑아주신 분들 중에는 우리 당을 지지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다른 건 다 1, 2번에 투표했지만, 구의원은 저를 찍으셨다고 하셨다. 사실 ‘김건우’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투표소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보통 줄투표를 하는 상황에서 10%는 나를 기억하고 찍으셨다는 것이다. 혹시나 실수할까봐 3번만 다 찍었다고 해주신 분들도 많았다. 여러 약세 속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선거 끝나고 거대 정당 당선자들이 저에게 득표를 굉장히 많이 했다며, 날 보며 긴장했다고 하더라. 이제부턴 그분들이 어떻게 의정활동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외유성 해외연수를 비롯해 구의원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

 

당 혁신? 그 해답은 역시 진정성!

 

선거가 끝나고 얼마 전부터 당 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일단 후보로서 뛰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이 들었고 정당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당의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 현재도 당 혁신안에 대해 많은 검토를 하고 있고 그간 나왔던 혁신안과도 비교하고 있다. 사실 혁신안들은 다들 좋은 이야기이고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새누리당 혁신안도 Ctrl+C, Ctrl+V 한 것처럼 똑같은 내용인데 모든 정당이 발표만 하고 막상 지키지는 않은 것이다. 결국 진정성의 문제다. 정말 혁신을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4년 뒤 지방 선거에 나갈 지를 묻는데 4년이란 시간이 짧지 않기 때문에 확답을 하는 건 비현실적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의원다운 구의원의 역할을 제시하고 싶고, 개선된 선거운동 문화를 보여드리고 싶다. 나의 방식으로 해서 당선이 된다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입후보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겐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선거결과는 유의미한 결과이긴 하지만 당선은 아니기 때문에, 당선으로 증명해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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