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나의 것

정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03/15 [16:04]

내 몸은 나의 것

정의정 기자 | 입력 : 2019/03/15 [16:04]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이 검은 물결로 뒤덮였다.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 모임 ‘비웨이브(BWAVE)’가 인공 임신중절(낙태, 이하 ‘임신중절’)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My Body My Choice)’,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의 개정을 요구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엄연한 죄에 해당한다. 형법 제269조는 여성의 임신중절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70조에는 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들이 임신중절을 조력할 때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강간으로 인해 임신했거나, 유전학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 전염병이 있는 경우, 혈족 또는 인척간의 성관계로 임신한 경우, 임산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경우에 한해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그것도 배우자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서다. 이는 국가가 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여성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한 법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5~44살 임신 경험자 가운데 20% 가까이가 임신중절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사회생활 지장, 경제적 어려움, 자녀계획 등을 대표적 임신중절 사유로 꼽았다. 이는 현행법상 모두 ‘불법’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부로 '가족사업 계획'이 포함되면서 그간 임신중절을 묵인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의 원인으로 임신중절을 지목하면서 오랜 기간 묵인해오던 이슈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현행 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성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국가가 규범으로 정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라고 주장한다. 즉, 여성의 몸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도구화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17년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및 도입'을 주제로 한 국민청원에는 23만여 명이 서명했으며,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설문에서도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이 7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간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절죄를 규정한 형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었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성장 상태와 무관하게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이므로 유전학적, 우생학적 이유가 아닐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합헌 의견을 낸 바 있다(2010헌바402).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사이에서 태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실 한 인간의 ‘선택권’과 다른 인간의 ‘생명권’이 길항할 경우 대개 생명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이것이 임신중절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임신중절에 대해 가능한 제한을 두어 태아의 생명권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주장이 간과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여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태아의 삶까지도 고민한다는 사실이다. 향후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날 것인지, 자신이 태아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보호할 수 있는지 여부를 깊이 심사숙고 하는 것이다.

 

임신중절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임신중절을 합법화시키면 아무나 병원에 가서 수술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여성이 충분히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시각이 깔려 있다.

 

알고 보면 여성들 본인도 자신의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는 임신중절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임신 중절이 바람직하다는 판결을 국가가 내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임신을 유지할지 중절할지 여부를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와 같이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만 보는 시각은 본질을 왜곡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올봄 7년 만에 임신중절을 규정한 형법 규정의 위헌 여부 판단을 앞두고 있다. 과연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분명한 것은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이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1973년 낙태 금지법이 위헌 판결을 받은 미국만 보더라도, 그 이후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러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이들은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의사들을 죽이고 연방대법원의 판사를 갈아치우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릭키 스턴(Ricky Stern)과 앤 선버그(Anne Sunberg)가 만든 다큐멘타리 영화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Reversing Roe, 2018)를 보면 그 실상이 잘 나와 있다.

 

40여년 전에 임신중절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미국도 이러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 결과가 불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 언급된 기본권이 임신중절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4월 판결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시작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가치와 문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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