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꼭 봐야할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효정 기자 | 기사입력 2019/11/30 [23:49]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꼭 봐야할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효정 기자 | 입력 : 2019/11/30 [23:49]

누적 관객수 364만명. 손익분기점 300만을 간신히 넘기고 개봉 3주차까지 흥행질주를 이어가다 최근 박스오피스 4위로 주춤하고 있다.

 

천만 관객쯤은 넘어야 흥행이라 여기는 요즘 시대에 큰 흥행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개봉 전부터 페미니즘이라는 소재로 이슈가 됐던 작품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가 출간한 2016년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소설이 영화보다 좀 더 강도가 있다고는 하나 72년생 아이 셋을 키운 필자가 보기에 82년생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여자 이야기는 순하디 순할 수밖에 없다.

 

큰 갈등을 기대하고 본다면 개봉 전 페미니즘 영화로 인식되며 평점 테러와 악플 세례에 시달리고 개봉을 중단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있었다는 작품이 겨우 이건가 싶을 것이다.

 

62년생, 52년생, 42년생이 보면 콧방귀나 뀔 수도 있겠다. 애기 업고 냇가에 나가 방망이질하며 매일 손빨래하던 윗세대와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요즘 애들은 너무 약해 빠져가지고...’라고 말하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우선 영화 속 김지영의 삶은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표면적인 갈등 요소가 없다. 갈등을 크게 부각하지도 않는다. 발단으로 시작해 발단으로 끝난다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 시대 평범하고 보편적인 여자의 삶을 대표하는 김지영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의도된 것일 지도 모른다.

 

기왕 하는 김에 여자의 입장을 좀 더 속 시원히 대변해주면 좋았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보다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더 유리했을 수도 있다.

 

김지영의 객관적 상황은 매우 평범하다. 아들을 더 귀히 여기는 고지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일으키는 갈등은 크지 않다.

 

오히려 딸들의 불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자상하며 따뜻한 면도 있다. 막내아들은 아버지의 차별적 사랑을 받고 자라기는 했지만 누나 둘에 눌려 오히려 여자를 더 잘 이해하고 순종적인 남자로 성장한다.

 

갈등을 부각시켰다면 아버지가 도통 말이 안 통해서 억울함이 오랫동안 짓눌려졌거나 남동생이 여자를 무시하는 가부장적 남자로 자라서 억울함이 증폭됐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김지영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직장을 다니다 공유와 결혼한다. 혹자는 공유가 남편인데 뭐가 불만이냐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다가 공유는 이 세상 남편이 아닌 듯 부인에게 사랑을 쏟는다. 부인의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하려 하고 해결해보고자 노력하며 따뜻하고 자상하게 품어준다.

 

남편마저도 큰 갈등의 원인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김지영은 큰 문제 없는 아니 오히려 복이 많은 이 시대 젊은 주부다. 아니 저 정도면 됐지 뭐가 문제야 싶을 정도로.

 

그러나 김지영이 느끼는 세계는 겉으로 보여지는 세계가 아니다. 예민하게 느껴지는 세계다.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가다 벤치에 지친 몸을 내려놓았을 때 사회적 한량으로 취급받아 상처받고, 가게에서 아이 때문에 커피가 쏟아지자 사회적 민폐녀가 되어 상처 받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아이가 똥을 싸자 또다시 민폐녀가 되어 공중화장실에서 어렵게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들에 힘이 든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아이를 키워본 여자들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들이다. 특히 더러운 공중 화장실 기저귀대에 아이를 눕혀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볼일을 보고 아이 기저귀와 여벌옷, 먹을 거리등을 담은 짐은 한 가득인데 가방걸이는 화장실 꼭대기에 붙어 있고, 화장실 칸은 좁디좁아서 아이 업은 채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답답하고. 아이가 둘이거나 셋인 엄마들은 이 장면에 공감하면서도 너 나 할 거 없이 이야기를 보탠다.

 

애가 더 있으면 그나마 문도 못 닫고 볼일을 봐야한다는 둥, 화장실 밑으로 발을 내밀고 볼일을 봐야한다는 둥. 사실 일상생활 속에 이런 짜증나고 힘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들이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매일, 24시간 지속적으로 생기며 여자의 숙명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런 여자의 삶에는 과거 꿈을 이루고자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했던 개인의 성취들이 그다지 필요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누군가 알 필요도 없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나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가게 된다.

 

필자 또한 아기 띠에 아이를 메고 양손에 두 아이를 잡고 걷다가 유명 커피숍에서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소리 내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옛부터 아기 볼래 밭 맬래 물으면 백이면 백 밭을 밭을 매겠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역시나 조상님들의 귀한 경험에서 나온 명언임을 깨닫게 된다.

 

김지영 역시 밭을 매는 데서 답을 찾으려 한다김지영은 자신을 찾기 위해 다시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 결국 좋은 기회를 포기하고 만다.

 

김지영은 결국 사회적 경단녀가 된다. 이런 김지영은 아이를 하나 더 낳을 수 있을까.

 

저출산 국가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놓인 한국사회에 김지영은 위험인물이다. 미혼녀들이 이 영화를 보면 결혼은 여성의 정체성을 뺏는 위험한 제도이고 육아는 나의 사회적 지위가 주부로 획일화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서 개봉 전부터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는 반감이 일고 우습지만 상영불가 국민청원까지 되었던 게 아닐까.

 

영화 속 김지영의 언니 김은영의 삶은 기혼여성에게는 또 다른 로망의 삶이다. 확실한 직업이 있어 경제적으로 자유롭고 결혼과 육아 없이 오직 나 자신으로만 살아가는 것. 이는 여성의 양날의 검 같은 삶이다.

 

정신병까지 얻으며 고통 받는 김지영의 삶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혼자라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가정과 나 자신을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속히 오기를 소망한다.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며 공감한 모든 여성들이 원하는 세상도 그러하리라. 영화 상영을 막고 페미니즘 영화로 젠더 갈등을 일으킨다며 비난을 한다고 해서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김지영의 삶은 다양한 여자들의 삶 가운데 하나겠지만 현시대 젊은 여성들의 현실을 대표하는 시대적 산물이기도 하다. 스토리도 그저 평범한 82년생 김지영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이슈몰이를 했던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조남주 원작, 김도영 감독. 모두 여자다. 여자들이 만든 여자들 얘기인데 내 남편 내 아버지가 꼭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은 여자이자, 딸로서 혹은 아들로서 엄마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도 봐주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기 보다는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문제의 답이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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