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여, 예의를 갖춥시다!

'분노, 열등감, 질투'는 인간의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Julie Go 기자 | 기사입력 2020/10/02 [09:01]

미국이여, 예의를 갖춥시다!

'분노, 열등감, 질투'는 인간의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Julie Go 기자 | 입력 : 2020/10/02 [09:01]

‘빅장을 걸어볼까!’

패전을 막고 비기기라고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한 아이가 끝내 화를 못 참고 펄쩍 뛰며 같이 장기두던 형을 덮쳤다. 아들녀석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승부욕이 강한 동생과 장자로서의 관용이 이미 고갈된 형의 다툼은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더불어 매일 쉬지 않고 타오르는 활화산이 되었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한국장기를 꽤 열심히 두는 녀석들은 어느새 초나라와 한나라의 군대를 능숙하게 지휘하는 장수들이다. 빨간색, 초록색의 요란한 한문으로 쓰여진 각 기물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읽을 줄도 모르지만, 포를 잘 다루는 기술을 연마했고, 마와 상의 길을 훤히 내다보며 궁성을 배치하는 것도 승부에 큰 변수를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직 내면의 ‘화’를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한 10대다. 한번 붙으면 체면이고 뭐고 없이 끝을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장기와 상관없이 무조건 육박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안하다. 오늘의 게임은 슬슬 장기전이 되어갔고 더이상 승전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기력이 바닥난 ‘한과 초’ 두 왕들의 전쟁이 됐다. 빅장을 걸려는 쪽과 빅장을 피해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쪽의 뜨거운 판이 절정을 이뤘다.

 

형이 동생의 울컥한 감정을 자극하는 말로 신경을 툭툭 건드리자 예상했던대로 동생의 주먹과 발길질이 시작되고 있었다. 말리다못해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허허, 고 녀석들, 장기를 둘때는 서로 예의를 갖추고 해야지.”라고 일단 웃음을 겨우 참으시며, “빅장도 피하면 멍군이고 못 막으면 남은 기물 점수를 더해 승부를 가리면 되고. 또 끝나면 최선을 다해 싸운 서로를 격려해야 미국의 신사지…그래야 내 새끼고.” 라고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지난달 29일 오후 9시부터(동부시간) 90분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에서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간의 기대했던 첫 대선 TV토론이 있었다.

 

큰 기대를 하고 세 아이들과 함께 지켜봤다. 그러나 말이 토론이지, 사실 우리 애들 싸움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마치 장기두던 성질 고약한 두 할아버지들의 말싸움 같아 아이들 앞에 엄청나게 창피했다.


현재 미국은 방송사마다 진보와 보수로 편이 나뉘었고 서로 지지하는 후보자가 확실하기때문에 어떤 방송을 듣느냐에 따라 누가 잘했는지 토론후 평가조차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 토론을 본 미국시민들은 당에 상관없이 모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두 후보는 ‘연방대법원, 개인신상, 코로나19 대응, 경제, 인종과 폭력, 선거 투명성’ 등의 굵은 정치적 주제와 상관없이 막말과 인신공격만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분노, 열등감, 질투” 같은 것들은 인간의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이 후보님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자신의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는 것일까! 


결국 미 대선토론위원회(CDP)는 30일, 앞으로는 대선 후보 간 질서 있는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 진행 형식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1일(현지시간)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열렸던 TV 생중계 토론은 미국 내에서 약 7천310만명이 시청해 역대 세 번째를 기록했다고 한다.  


역대 최고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간 첫 토론으로 시청자 수가 8천400만명이였다. 2위는 1980년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의 1차 토론이 8천60만명이였다.


다음 2차 토론(플로리다에서 현지시간 15일 예정)에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다음 수를 위해 한 수를 절제할 줄 아는 지혜와 담대하고 신사답게 자신의 방향을 제시 할 수 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줬으면 한다.


미국의 다음 4년을 책임질 대통령 후보들이여, 부디 품위를 지켜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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