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에게서 마이클 잭슨의 그림자가...<1>

박현서 대중문화평론가 | 기사입력 2020/11/11 [18:19]

BTS에게서 마이클 잭슨의 그림자가...<1>

박현서 대중문화평론가 | 입력 : 2020/11/11 [18:19]

해외 유력 언론들이 BTS(방탄소년단)를 비틀즈와 비교할 때 필자의 견해는 음악적 성과로 본다면 마이클 잭슨이 더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비틀즈가 록(rock)을 정립시키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록에 접목시켜 20세기 팝시장의 중심을 ‘록'으로 만들었다면, 마이클 잭슨은 팝에 있어서 인종적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 가장 큰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BTS가 인종적인 차별과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어 아시아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팝시장의 탑스타로 올라선 것과 일맥상통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팝의 황제라고 불리는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마이클 잭슨은 비틀즈, 앨비스 프레슬리와 더불어 세계 대중음악 시대를 구분 짓게 하는 역사적인 아티스트이다.

 

마이클 잭슨은 음악적인 성과와 사회현상, 언론의 공정성을 도외시한 황색 언론들의 삐뚤어진 공격, 인간적인 고뇌 등 너무나도 다룰 것들이 많아서 이번에는 'Thriller' 앨범 발매를 기준으로 한 음악적인 성과만을 정리했다.

 

1982년 12월, 마이클 잭슨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작업을 한 앨범 'Thriller'를 발매했다. 'Thriller'는 37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하며 6,500만 장 이상 판매가 되었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임과 동시에 평론가들에게도 만점에 가까운 극찬을 받았고,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립 음반 등록소에 등재되었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Official Video) 중에서   사진: 유튜브 캡쳐

 

이 앨범으로 나타난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인 성취를 말하자면 첫 번째로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다.

 

앨범이 발표되기 이전 30여 년간 미국의 팝시장은 흑인은 소울과 R&B, 백인은 록으로 음악적 경계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다. 심지어 흑인들의 음악으로 출발한 대중음악이 결국 백인 음악으로 변형되어 흡수되거나 저질 음악으로 여겨져 조기에 사멸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Triller' 앨범에는 소울, 펑크, 재즈 등의 흑인 음악과 록, 팝, 발라드 같은 백인 음악이 하나로 녹아들었다.그런데 이 앨범이 역사적인 판매가 될 정도로 뛰어난 대중성을 가진 덕택에 전 세계인이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었고, 백인들 역시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음악을 받아들였다. 

 

마이클은 음악에서 흑인과 백인과의 경계를 허물고 크로스오버 물결이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1980년대 기라성 같은 탑스타들, 프린스,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 유리드믹스, 웸 등이 마이클의 영향을 받은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였다.

 

마이클 잭슨이 이룩한 또 다른 위대한 성과는 음악 장르에서 흑인과 백인과의 경계를 무너뜨린 동시에 미국 팝시장에서 인종적으로 차별받고 무시된 흑인 아티스트들의 위상을 격상시키며 이들이 미국 음악계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는 것이다.

 

마이클 이전에도 미국에는 흑인 스타가 있기는 했으나 그들은 항상 2인자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들이 내민 도전장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Thriller' 앨범 이전의 마이클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958년에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네 명의 형과 불과 11살의 나이에 잭슨 파이브의 리드보컬로 1969년 데뷔를 했다. 데뷔와 동시에 비틀즈의 전설적인 명곡 ‘Let it be’를 밀어내고 ‘I Want You Back’으로 빌보드 핫100 1위를 거머쥐었다. 이는 역대 최연소 빌보드 1위이다.

 

후속곡 ‘The Love You Save’는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밀어내고 1위를, ‘I’ll Be There’는 5주간 1위를 했으며, 1972년에는 ‘Ben’이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그룹 아바도 빌보드 핫100 1위는 ‘Dancing Queen’이 유일하다. BTS가 ‘다이너마이트’로 1위를 하기까지 방탄소년단은 물론 전 세계 아미가 얼마나 노력하고 고생을 했는지는 독자 분들도 잘 알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잭슨 파이브에서 독립해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같이 작업한 앨범 ‘Off the Wall’은 2천만 장이 판매되었다. 이 앨범은 일반 뮤지션들에게는 인생 최대의 업적으로 여겨질 정도의 명반이다. 

 

그러나 이런 마이클 잭슨도 그래미에서 남자부문 베스트 R&B보컬 퍼포먼스 상 하나만 수상하는데 그쳤다. 당연히 받아야 할 ‘Song of the Year’, ‘Album of the Year’,‘Record of the Year’ 중 하나도 수상을 못했

이 상들은 전부 백인 가수들이 가져갔는데 이 상황은 인종차별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시 미국의 대중음악이 흑인을 얼마나 차별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천부적인 보컬과 춤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학대에 가까울 정도의 강압적인 음악 교육을 받고 자라난 마이클 잭슨은 유년기 시절부터 공연을 해 현장 감각 또한 풍부했다. 더불어 마이클에게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었는데 야망까지 컸다.

 

그런 마이클 잭슨이 그래미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하자, 최고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함께 이를 악물고 만든 앨범이 바로 ‘Thriller’인 것이다.

 

1984년 마이클은 그래미에서 12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그래미는 8개의 트로피를 안기며 무릎을 꿇었다.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인종차별의 벽이 허물어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Thriller’ 이후 흑인 음악으로 천대받았던 소울, R&B가 궤도에 올랐고 휘트니 휴스턴, 라이오넬 리치, 프린스 등의 흑인 가수들이 백인들에게도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마이클의 음악들은 인종적으로 분리된 백인 라디오와 TV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마이클 이후의 흑인 가수들이 진출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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