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감정, 2020년에도 마녀가 산다

김민주 기자 | 기사입력 2020/07/22 [14:20]

혐오 감정, 2020년에도 마녀가 산다

김민주 기자 | 입력 : 2020/07/22 [14:20]

외국에 나가본 경험은 여행이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인종차별은 뉴스 속 이야기였다. 물론 유럽여행 중에 나를 무시하는 태도의 현지인을 만난 적이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혐오의 감정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전제는 한국인인 내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백인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친구가 미국출신이라고 알고 있었다. 전 세계를 여행 다녔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내게 “나는 사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어. 부모님은 유대인이었어. 하지만 나는 유대종교를 믿지 않아”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지인은 내게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해서 돈 번거 알지? 완전 싫어”라고 말했다.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 친구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혐오감정을 집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걸그룹 AOA의 전 멤버인 민아는 AOA활동 당시 그룹리더였던 지민에게 10년 동안 왕따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가해자였던 지민은 AOA의 소속회사인 FNC 엔터테인먼트에서 탈퇴됐다.

 

아이돌들의 왕따 사건 외에도 연예계는 인터넷 악플로 상처입고 다치는 연예인들이 문제시되고 있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전 KDN 소속 한 직원이 자신의 갑질을 신고한 피해자를 왕따시키며 2차 가해까지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뉴스에 보도가 되는 일 외에도 평범한 일상 속 혐오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현대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견제해야 할 대상은 마음속 한구석에 있는 혐오라는 감정이다.

 

눈으로 보이는 질병은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순식간에 전염돼도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는 혐오로 인해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지만, 정확한 것은 누구도 이득을 얻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대상이나 단체를 미워하는 감정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존재하며, 그 대상은 소수자에게 향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집단이 소수자를 혐오했던 사례의 대표적인 예로 중세시대 유럽의 ‘마녀사냥’이 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마녀사냥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마법과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종교재판소에서 마녀사냥을 전담했고 초기에는 희생자 수가 적었지만 이후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 영국 화가 윌리엄 포웰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의 1848년 작품 ‘마녀 재판(The Witch Trial)’.     ©김민주 기자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종교재판은 악마의 주장을 따르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는 마법사와 마녀를 처단하기 위한 지배수단이 되었다. 17세기 말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 되었는데, 이 정도는 심각한 경우가 아니다.

 

한 마녀재판관은 15년 동안 900명의 마녀를 화형시킨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결말의 과정은 얼마나 끔찍할까? 공동체의 희생양으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해 심판관은 개인 간의 분쟁을 악마적 마법의 결과로 해석하고 자백을 이끌어 냈다. 자백하지 않는 자에게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심문과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종교재판은 그리스도교에서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이교도를 박해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가를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마녀사냥의 결말은 농촌사회를 분열시켰고 개인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향하게 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작한 혐오는 사회를 분열시킨 것이다. 우리사회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혐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장 학교만 가더라도 왕따가 없는 곳이 없고,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이뿐만 아니라 요새는 아동, 청소년, 여성, 남성, 노인 등 각 계층을 혐오하는 이유가 인터넷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마녀와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대서사를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마녀를 없애는 것이다.

 

권력자는 소수자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만든다. 본인이 소수자, 즉 마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결국 혐오는 서로를 미워하며 생기는 마음으로 인해서 자유를 상실하게 만들 뿐이다. 역사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혐오의 감정을 없애기 위한 발걸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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